굶주린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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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굶주린 호랑이
  • 글/그림백인태
  • 면수42쪽
  • 발행일2024.8.16.
  • 크기217×284㎜
  • ISBN979119327905277810
  • 가격17,000원


호랑이일까? 고양이일까? 어호옹! 옆에 있는 고양이에게 묻고 싶어진다. 너 사실 호랑이지?

두 개의 다른 얼굴이 마치 하나인 듯 정면으로 응시하는 표지가 눈길을 끈다. 『굶주린 호랑이』를 읽고 나면 지금 옆에 고양이가 있다면 자세히 보게 될 것이다. 혹시 정체를 숨기고 고양이인 척하는 호랑이는 아닐까? 하면서.

이 책은 숲을 호령하던 호랑이가 무자비한 인간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오로지 살고자 도망친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황량한 사막까지 내몰린 호랑이에게 먹을 거라곤 손톰만한 벌레뿐이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더운 사막에서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던 호랑이는 그만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었다. 호랑이로서의 위용은 온데간데 없이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나그네가 가엽게 여겨 집으로 데려간다. 이제 호랑이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 귀엽게 골골거리는 고양이인 척하며 나그네의 집에 자신을 의탁하고 있다. 그러다 간혹 표호한다. 어호옹!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과 행복이 되는 그림책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으로 작가로서의 여정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4회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첫 그림책 『나와 자전거』로 2020 볼로냐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으며, 이후에 펴낸 그림책 『하늘호수』는 2022 천보추이국제아동문학상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 전문가 부문 3위에 올랐습니다.

그림 그리며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인가 호랑이인가. 호랑이는 세 보이고 고양이는 귀엽잖아. 거친 야생에서는 강해야 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살려면 귀여운 게 짱이잖아. 어쩌면 좋을까나∙∙∙∙∙∙. “정답은 생긴 건 고양이인데 호랑이 같이 강하다면 만사 오케이. 만사 오케이가 최고다.”

어느 날 우리 집 고양이가 말했다.

“있잖아. 집사야 난 사실 호랑이야. 뭐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너한테 신세 지고 있네. 하하. 근데 여기서 지내다 보니 너는 손님 대접에 미숙한 편인 것 같더라. 그래서 불만이 좀 쌓이네. 뭐 그런 마음이라고 오늘 저녁 기대해도 되겠지…. 다시 말하지만 난 호랑이야.”

이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놀고 자빠졌네.”

백인태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저마다의 깊이로 다가가는 이야기

책을 읽을 때는 웃기다. 굶주림에 쪼그라들어 고양이로 변하는 호랑이가 귀엽고 앙큼하며 단순하게 웃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애잔하다. 고양이로 나그네의 집에서 배고픔 모르고 살고 있으나 숲속에서 군림하던 호랑이의 포효를 잊지 않고 있는, 그러나 그 웅장한 울음을 더는 낼 수 없는 그런 존재로 고양이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라는 이중독자를 가진 매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겐 고양이를 바라보며 웃기는 상상을 한 이야기로 다가갈 것이며, 어른들에겐 애잔했던 과거의 어느 한 때 또는 지금 웅지를 펼치지 못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지 않을까? 호랑이와 고양이, 그 둘을 하나의 존재로 엮어 단순하고 웃기지만 강렬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또 누군가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이중독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재미나고 묵직한 그림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림에 녹여낸 넘치는 위트에서 확장되는 의미

앞면지에 보이는 등엔 용 문신이 그려져 있다. 뒷면지에 보이는 등엔 뱀이 보인다. 용 문신은 숲속에서 용맹하게 살던 호랑이의 것이고, 뱀 문신은 나그네의 집에서 사는 고양의 것임을 책을 덮으며 알게 된다. 또한 호랑이가 가졌던 용 문신은 호랑이를 데려온 나그네의 셔츠 뒷면에 그려져 있다. 이처럼 그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의미가 더 다채롭게 확장된다. 무자비한 인간이 동물들의 쉼터를 쳐들어올 때도 쉽게 포기하는 호랑이와는 달리 먹이로 낙점된 ‘검’자가 붙은 돼지가 보여주는 항거는 치열하다. 돼지는 약자이면서도 끝까지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반면 호랑이는 털을 직선으로 날리고 눈물을 흩뿌리며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위기 아래에서 강자와 약자의 대처를 대비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빈틈없이 그려진 그림도 라인과 채색, 그리고 효과 측면에서 여러 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림 자체에 담긴 이야기의 방향과 전개의 레이어도 다양하게 얽혀 있어 반복해서 읽을수록 이야기의 폭이 확장됨을 느낄 수 있다.

디지털 회화로 풀어낸 네온 컬러와 이미지의 향연

주인공은 한 마리의 호랑이다. 그러나 이 호랑이의 모습을 표현하는 색깔은 장면마다 이야기를 따라 변한다. 푸른 달빛이 드리워진 사막 위에 축 늘어져 있는 굶주린 호랑이는 푸른색이다. 인간의 습격을 받아 도망가는 호랑이는 붉은색이다. 도망쳐 도착한 사막에서 밤엔 푸른 호랑이로, 낮엔 분홍색 호랑이로 데워진다. 그러다 어느 때는 무지개색 호랑이가 되며 그 색을 점차 바꿔간다. 마지막에는 호랑이 원래의 색을 찾지만 안타깝게도 고양이로 불리는 존재로 남게 된다. 변화하는 색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호랑이만이 아니다. 배경 전체에 적용된 네온 컬러는 호랑이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마침내 쪼그라들어 고양이로 정체를 숨기기까지의 버라이어티한 상황을 생동감 넘치게 전달한다.

오랫동안 디지털 회화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깊이 없음 때문이었다. 깊이는 어디에서 올까? 그동안 나는 물감을 지면에 바르는 행위, 다시 말해 실제 부피와 질감을 가진 염료를 물리적 지면 위에 남기는 작가의 움직임에서 깊이를 느꼈다. 자신의 움직임이 흔적을 남긴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한 획 한 획 신중하게 펼치는 예술가의 선택을 사후에 읽어내면서 그림 감상의 기쁨을 느꼈다.

백인태 작가의 『굶주린 호랑이』는 100% 디지털로 창작된 그림책이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의 깊이가 있었다. 원경과 근경의 차이, 밝음과 어둠의 차이, 윤곽과 면적의 차이에서 오는 선명한 감정이 생생했다. 이상했다. 디지털 세상은 부피와 질감을 가진 세계가 아닌데? 이 깊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굶주린 호랑이』 덕분에 똑바로 알게 됐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그림의 깊이를 좌우하는 건 염료의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고민의 총량이라는 걸. 백인태 작가는 디지털로 『굶주린 호랑이』를 만들며 셀 수 없이 많은 레이어를 생성하고 삭제했다. 즉흥적으로 색조 팔레트를 만들고 조정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모든 과정을 그림 안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아날로그 시대 예술가들이 감히 보여주지 못한, 붓질하기 전까지의 고민 과정을 ‘레이어’라는 디지털 형식으로 드러냈다.

앞서 던진 질문을 다시 받아본다. 앞으로의 어린이는 어디에서 ‘그림의 깊이’를 느낄까? 이에 대한 답을 『굶주린 호랑이』에서 찾는다.

– 최혜진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에디토리얼 씽킹』, 『우리 각자의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