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문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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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어쩌면 문 너머에
  • 글/그림송기두
  • 면수54쪽
  • 발행일2023.8.30.
  • 크기267×373㎜
  • ISBN9791193279007
  • 가격28,000원


열리고 닫히는 문을 통해 마음의 열고 닫음을 내밀하게 바라보며 건네는 위로

한 남자가 문을 꼭 닫고 집 안에 있습니다. 그는 실내에 있으면서도 털실 옷과 긴 머플러로 온몸을 감싼 채 문 밖에서 난폭한 존재들이 자신을 훔쳐볼까 두려워합니다.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 상황에서 주인공은 화분에 물을 주고 어항 속 물고기를 돌보며, 지난 날이 담긴 액자로 벽을 꾸밉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부터 ‘똑 똑 똑’ 소리가 들립니다. 문틈을 타고 들어오는 소리는 그를 두려움으로 덮어 더 구석으로 몰기도 하지만, 설렘으로 다가와 문 밖을 기대하게도 합니다. 주인공이 가진 마음의 벽을 ‘문’이라는 대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책 속에서 보여주는 다채로운 문의 이미지는 주인공이 겪고 있는 감정의 또 다른 형상으로 보입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문 너머의 소리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그 소리는 향기로운 꽃잎이 되어 흩날립니다. 노란 꽃잎이 건네는 추억의 힘으로 마침내 그는 문을 열고, 그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를 만납니다. 그리고 둘은 함께 문밖으로 나와 나란히 세상을 향합니다.
문은 열렸지만, 바람 소리는 여전합니다. 똑 똑 똑 소리와 함께요.

고요한 시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고요한 곳이었기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건축을 배웠고 한동안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마음에 닿는 공간에 마음에 닿는 가구를 놓으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림이 이야기를 만나 퍼지는 감정의 공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만듭니다. 내 마음과 세계의 어긋남에 상처 입고 작아지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이 책을 쓰고 그렸습니다.

문득 마음을 위한 방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벽지는 어떤 색일지, 바닥은 나무일지, 가구들은 어떤 모양일지, 액자가 걸려있다면 그 안에는 무슨 그림이 있을지.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지만 꼭 한 가지 바란다면 아름다운 문이 있었으면 합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서 여닫기 알맞은 문. 꽃과 새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어서 그 너머를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문.
세상이 내 마음과 다름에 쉬이 상처받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내 마음속의 문은 돌처럼 무거웠고 차가웠습니다. 행여나 조그만 틈이라도 생길까, 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또다시 나를 할퀼까 두려워 문을 단속하고 또 단속했던 시간들은 어느덧 지나갔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덧대었습니다.
때로는 살아가는 것만으로 버거워서 혹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들에 치여서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마음은 늘 괜찮다 말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차가운 문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이 그런 마음들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문 너머에서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하루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송기두

다채로운 문의 형상과 움직임에 투영된 심상의 대화

문은 건축의 공간에서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가변적 통로이자,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움직이는 장벽입니다. 내밀한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갈 때도 우리는 대문, 방문 등, 문과 문을 거듭 닫으며 안으로 향하지요. 물론 밖으로 나올 때도 이와 다르지 않아, 문을 열고 또 문을 열어 세상을 향해 나옵니다. 이처럼 문은 3차원적인 공간을 구분하는 구조물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벽을 일컫는 심리적 구조물이기도 합니다. 건축을 전공한 작가가 물리적인 공간에서 열고 닫히며 공간의 쓰임과 느낌을 구분하는 문의 기능성에 마음의 여닫음을 접목시켰다면, 다양한 문의 형상과 자태에는 주인공이 느끼는 현재의 감정과 상태를 세밀하게 담아 차원을 넘나들며 마음을 담아냅니다.

그림으로 이어가는 상징의 서사로 그림책 읽기의 묘미를

장면마다 보여지는 각각의 그림 요소들은 이야기가 확장되는 데 저마다의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머플러로 주인공의 마음 상태를 따라가 볼까요? 실내에 있으면서도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머플러로 목을 감고 있던 그는 “각별히 조심한 덕분에 여기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거울 밖 그의 모습과는 달리 머플러를 푼 자신을 거울 속에서 봅니다. 비록 그 모습이 자신의 바람일지라도 문을 비집고 들어온 거대한 물길을 우산 하나로 막아내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경험했기에 거울 속에서나마 목도리를 벗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단절된 세계에서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인 장치였던 머플러가 주인공이 문 밖으로 나갈 땐 옷걸이에 걸려 있어, 자신을 옭아매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음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작고 메마른 나무가 심겨진 화분, 어항 속을 맴도는 물고기 한 마리, 부서진 우산, 선인장 가시로 둘러싸인 문, 180 여개의 액자가 걸린 벽 등, 이야기를 건네는 수많은 이미지들에 귀 기울이시면 이야기를 보다 더 다채롭게 즐기실 수 있답니다.

잔잔히 피워낸 연필의 향연에서 강렬하게 마주하는 색의 세상, 노출양장제본으로 더 몰입되게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낸 원화의 선을 살리기 위해 판형이 커졌습니다. 원화의 크기보다 책이 작아지면 가는 연필선은 자칫 뭉개져 보이기 쉽거든요. 작가는 2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선 하나하나를 겹겹이 채워 각양각색의 문을, 또 각양각색의 마음을 책에 담았습니다. 액자를 벽에 가득 채운 장면은 2개월을 꼬박 그려서 완성했다고 해요. 은은하고 단정하게 강약을 조절하며 명암으로 채워가던 흑백의 연필화들 사이에서 섬뜩하게 드러나는 붉은 눈의 늑대와 보랏빛의 날카로운 손톱 등 색연필로 그린 장면은 주인공의 심리, 그 반경의 너비를 알려주면서도 그림책 감상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합니다. 작가가 긴 시간 몰입하여 완성한 그림을 온전하게 감상하실 수 있도록 노출양장제본 형태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편히, 그리고 온전히 이 책을 누리시며, 그 순간이 위로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