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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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걷다 보면
  • 글/그림이윤희
  • 면수38쪽
  • 발행일2021.2.25.
  • 크기257×239㎜
  • ISBN9788992704830
  • 가격15,000원
  • 2022 북스타트 선정
  • 2021 도봉구 한 도서관 한 책 선정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롭고도 오래된 친구들

바람결을 따라 길을 걷기 시작한 아이의 눈 앞에 색다른 모습의 사슴이 보입니다. 페이고 금이 간 보도블록이 만들어낸 그 모양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던 사슴처럼 늠름하게 길 한 켠을 지키고 있지요. 길 위에서 사슴을 찾아낸 아이는 보다 깊은 눈빛으로 그 동안 무심히 걸었던 길을 바라보면서 익숙하고도 새로운 친구들을 찾아냅니다.

물줄기가 흥건한 꽃밭과 건널목, 신호등 거리, 모이를 먹는 비둘기, 빗줄기에 쓸려 모인 꽃잎 더미, 길에 나뒹구는 우산 등 아이가 걷는 길이 특별한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느 길과 다르지 않은 그곳이 바뀐 시선으로 태어난 모습은 어떨까요? 여우에게 꽃을 건네는 생쥐, 향기 따라가는 고양이, 거인의 정원, 우주의 어느 별과 교신하는 외계인, 어마어마하게 큰 핫도그, 어미 새의 날개 품에서 모이를 먹는 아기 새들, 꽃잎 악어, 메리 포핀스의 마법 여행, 오리 가족의 산책 등 평소 생각할 수 없었던 모습들이 다가옵니다. 걷다 보면 익숙하지만 색다른 친구들을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윤희 작가(글,그림)

홍익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습니다. 일상에서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산책을 하면서 주변의 풀과 나무와 길의 작은 변화들을 느끼며 아쉬움과 기대를 가지곤 합니다. 『걷다 보면』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던 그 길이 반갑고 기대되는 걸음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쓰고 그린 첫 그림책입니다.

작업실을 출퇴근하며 매일 지나는 길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넓은 차도, 다른 한쪽은 풀숲 언덕이라 구경할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재미없는 길입니다. 늘 바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덧 작업실, 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천히 길을 걸었습니다.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그림자도 보고, 바닥에 깨지거나 규칙 없이 제멋대로 끼워놓은 듯한 보도블록도 보면서. 한참을 보니 재미있는 형상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서 동네 슈퍼 갈 때도, 화방 갈 때도, 한강공원 갈 때도 한동안 바닥만 보고 다녔습니다. 늘 다니는 길인데 왜 이제야 발견했는지∙∙∙∙∙. 길 위에 사슴도 있고, 생쥐도, 여우도, 악어도, 외계인도, 그리고 큰 배도 있습니다. 나만 아는 길 위의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만날 때마다 반가워 그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늦은 밤 지친 퇴근길에도 어느덧 사슴이 보이면 ‘집에 다 왔구나’ 하고 안도하며 들어가게 됩니다. 다른 이들도 조금 여유를 가지고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못 보고 지나쳤던 다른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 이윤희

건조하게 바라보던 길에 이야기를 불어넣다

길 위를 빽빽이 채운 보도블록, 조금씩 그 모양과 색깔이 다른 그들이 서로 어깨를 맞물리며 마주하고 있는 건조한 도시의 모습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찾아 건넵니다. 그저 걸어가는 ‘길’이라고만 생각했던 삭막한 그곳에 작가가 불어넣은 숨은 생명의 창조와도 같은 거창한 영역은 아닙니다. 단순히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지요. 그렇게 작가는 보도블록에 숨어 있던 사슴을 불러내고 여우와 생쥐의 관계를 눈치챕니다. 데구루루 굴러 온 공 하나, 풀 한 포기, 고양이, 하수구 뚜껑 등 모두 평소에 보는 것들이지만 작가가 그만의 눈길로 다시 조명하자, 그 길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담긴 또 하나의 세상으로 다가옵니다. 사각사각 연필선으로 그려낸 흑백 그림은 길 위에서 떠나는 상상 여행을 현실의 색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이끄는 묘약과도 같습니다.

연필선이 보여주는 세밀하고 풍부한 농담의 파노라마

아이들에게 가장 친근한 필기도구인 연필, 그림도구로는 소박해 보이는 그 연필만으로 작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다양한 굵기와 진하기의 연필을 사용해 그려낸 흑백 그림은 동양화의 풍부한 농담뿐만 아니라, 연필선이 주는 세밀함 또한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장면들을 유심히 보면 연필선 하나 하나가 이어져 면이 되고 형태를 이루되, 그 형태들은 경계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더불어 서로의 형상에 스미도록 그려진 수많은 선을 응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이 그어진 방향과 이야기가 흐르는 쪽이 일치하여 독서의 편안함을 내밀하게 이끕니다. 여백을 살린 프레임은 연필 그림의 서정적이고 단아한 정취를 시각적으로 배가시키며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