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순록의 태풍
- 글/그림허정윤
- 면수42쪽
- 발행일2026.4.23.
- 크기287×219㎜
- ISBN9791193279144
- 가격28,000원
이름과 자유, 그 사이에 선 두 순록의 동행
인간의 개발로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고 홀로 떠돌던 야생의 순록은 목장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순록 ‘버드’를 만납니다. 목장 안의 순록들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끼니 걱정도 없습니다. 이름도, 머물 곳도 없는 순록은 버드에게 자신도 “이름을 갖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름을 갖는 순간 더 이상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버드는 이름 지어 주기를 망설입니다.
이후 둘은 숲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삶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 시간이 깊어질수록 순록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되고, 버드는 그런 순록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드는 거대한 순록 무리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순록의 태풍’을 마주하고, 그 광경은 버드 안에 봉인되었던 야생의 감각을 깨웁니다. 마침내 버드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기로 결정하고, 순록과 함께 잃어버린 길을 다시 잇는 귀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름’의 의미를 통해 소속과 자유, 보호와 존재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림책 글 작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온 허정윤 작가가 이번 『순록의 태풍』에서는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아 작업했습니다. 종이를 자르고 켜켜이 쌓아 올려 완성한 이미지 조형에 빛 연출을 더해 이규철 사진 작가의 촬영으로 책에 담겨졌습니다. 이러한 레이어링 페이퍼 아트의 느낌을 책의 물성으로 구현하기 위해 책 표지와 내지 첫 장을 레이저 커팅으로 제작해, 겹겹이 쌓여 연출되는 이미지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지구의 북쪽 끝, ‘알래스카 1002’라 불리는 땅이 있습니다. 거센 바람이 천적을 막아 주는 그곳은 순록이 새끼를 낳고 잠시 쉬어 가는 마지막 낙원입니다. 그러나 그 오래된 길 위로 인간의 송유관이 검은 핏줄처럼 뻗어 왔습니다. 우리가 편안함을 얻는 사이 순록은 수천 년 이어 온 그들의 길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길 앞에서 두 마리의 순록을 떠올렸습니다.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야생의 순록과, 목장 울타리 안에서 ‘버드’라는 이름을 얻은 순록이었습니다. 동물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보호일까요, 아니면 다시는 숲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표식일까요.
수백 마리의 순록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질주하는 ‘순록의 태풍’은 순록이 위기 앞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움직임입니다. 포식자의 위협이 감지되면 순록 무리는 흩어지지 않고 서로에게 모여듭니다. 강한 개체들이 바깥쪽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그 중심에는 가장 약하고 어린 존재들이 보호됩니다. 저는 이 움직임을 단순한 방어 행동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무리의 움직임으로 만들어 내는 연대와 돌봄의 구조처럼 보였습니다. 혼자서는 약할 수 있지만, 함께 원을 만들 때 순록들은 서로의 벽이 되고, 서로의 보호막이 됩니다. 그 모습은 제게 순록들이 무리의 움직임으로 이루어 내는 숭고한 연대와 사랑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장 빠른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전하게 협력하는 자들이 살아남는 세계. 그것이 제가 바라본 ‘순록의 태풍’입니다.
생존을 넘어서는 존재 그 자체의 숭고함, 그 감각의 무게를 담기 위해 종이를 수없이 잘라 겹겹이 쌓아 올리며 순록이 오래 지켜 온 길의 시간을 새기고자 했습니다. 이제 버드는 이름을 내려놓고, 순록은 잃어버린 길을 향해 다시 걸어갑니다. 『순록의 태풍』이 끊어졌던 순록의 길 위에 놓이는 작은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름을 넘어 존재로 돌아가는 길, 『순록의 태풍』
알래스카의 순록들이 수천 년 동안 이어온 길이 송유관과 인간의 구조물에 의해 끊기고, 결국 절반만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현실은 이 작품의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 환경에서 순록은 가족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지냅니다. 인간의 목장에서 살고 있는 순록 ‘버드’는 오늘에 대한 불안 없이 지냅니다. 작가는 같은 순록이지만 둘이 처한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치로 ‘이름’을 사용합니다. 하루가 불안정한 순록은 버드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이름을 가지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버드는 순록에게 쉽사리 이름을 지어주지 못합니다. 야생과 목장이라는 대비되는 공간 속에서 ‘버드’와 야생 순록은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며, 인간 사회의 규범과 자연의 법칙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마침내 버드가 이름을 버리기로 결정함으로써 존재의 회복을 강조하며, 순록의 태풍처럼 개체를 넘어 ‘무리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야생의 에너지와 근원적 자유를 독자에게 전합니다.
진정한 회복과 자유는 무엇일까
마침내 두 순록은 울타리도, 이름도, 불안도 사라진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들이 따라가는 보이지 않는 발자국은 본성으로 향하는 길이며,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누군가를 자연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름을 버린 순록과 이름을 가지고 싶었던 두 순록이 야생으로 떠나는 여정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요? 우리 모두는 사회 속에서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우리의 전부일까요? 그리고 그 이름을 넘어선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두 순록의 이야기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질문이 이어집니다.
겹겹이 쌓아 간 이미지가 만드는 빛과 공간의 울림
책 속 장면들은 레이저 커팅으로 완성된 이미지를 층층이 겹친 레이어링 페이퍼 아트로 표현되었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쌓이며 만들어 내는 장면의 깊이는 순록과 버드가 함께하는 공간을 한층 더 입체감 있게 전달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이를 잘라 이미지를 만들어 쌓아 올리는 과정은 끊어진 길을 더듬어 이어 가는 행위와 닮아 있어 단순한 입체감을 넘어 시간의 축적과 감각의 흔적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버드의 뿔 모양 또한 버드 내면의 변화를 가늠하는 표식 중 하나입니다. 목장 주인에 의해 짧게 잘렸던 뿔은 순록과 함께하며 마치 야성을 회복하듯 점점 자라나 마침내 둘이 함께 야생으로 떠날 때에는 순록과 버드를 구분할 수 없이 그저 ‘두 순록’으로 보이게 됩니다. 특히 ‘순록의 태풍’ 장면은 이 작품의 정서를 응축하는 핵심 이미지로, 개체가 아닌 무리로서 살아가는 생명의 힘과 야생의 본능을 강렬하게 전합니다.

